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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48시간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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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평일에 남자와 내가 회사에서 휴가를 맞춰서 냈다. 벚나무 꽂망울이 작고 단단한 강원도의 옥수수 강냉이처럼 막 맺히기 시작해서 그 여린 것 같으면서도 힘있게 알알이 박혀 있는 작고 단단한 꽃망울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던 날이었다. 남자와 나는 일찍부터 서울 근교에 위치한 이제 막 오픈한 브런치 카페에 갔다. 좀 더 자세히 서로의 재정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놓고 결혼식부터 신혼여행 그리고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보고 싶었기에 내가 제안한 데이트였다. 또 그 날 저녁 남자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 뵙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침 일찍부터 계속된 긴장 상태에 있었다.

 

예식에 대한 문제는 둘 다 쉬운 합의점에 도달했다. 남들처럼 평범한 예식을 할 만 한 돈도 없었거니와 이미 한번 결혼해본 그는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어 했고, 나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될 만큼 결혼식자체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주 작게 직계가족과 축의금 걱정 없이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 줄 친구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왔던 터였다. 여자들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있다던데 본인이 처한 상황 때문에 작은 결혼식을 할 수 밖에 없어 신부의 입장을 고려하여 진짜 작은 결혼식이 괜찮은 건지, 내 눈치를 살피는 그의 마음이면 나는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생활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빠가 지금 이것저것 빼면 한달에 쓸 수 있는 돈이 이백 남짓 되는 거지? 그럼 내가 실수령액이 삼백쯤 되니까 아예 허리띠 확 졸라매서 삼백을 다 적금으로 부어버리고 이백으로 생활할까? 신혼인데 뭐 아껴서 쓸면 이백으로 둘이 못 먹고 살겠어? 이렇게 몇 년 바짝 모으면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애 하나 낳아서 기를 수 있지 않을까?”

남자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남자가 괴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의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뜨고 소세지 한 조각을 입에 넣으려다 말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너무 힘들다고. 부부사이도 예전 같지 않아지고 전처랑 섹스리스가 시작된 것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였다고. 그냥 나만 바라보고 나만 위해서 우리둘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또 가슴이 철렁했다. 아이를...갖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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