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우리처럼 절절한 만남, 연애, 사랑이 이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난 14개월 동안 남자와 인연을 맺어오면서 나는 내 생의 마지막 인연을 만났다고, 나는 남자의 조건이 아니라 사랑을 보고 영원을 꿈꾸는 이 시대의 마지막 순애보 일거라고 자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혼남 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이혼과 재혼, 비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이 존재하다지만 초혼인 여자가 애 둘 딸리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남자와 결혼을 꿈꾸는 연애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포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즉, 남자는 매달 백만 원 이상의 양육비를 충실히 내고 있는, 앞으로도 충실히 비양육자의 의무를 이행할 것만 같은 두 아들의 책임감 있는 애비 모습을 포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래도 그에데 더 전폭적인 사랑을 보냈던 것도 같았다. 싸질러놓은 새끼들 나 몰라라 하며 다른 여자를 만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남자야 말로 위선과 무책임의 표본이라고 늘 생각을 해왔으니까. 이혼은 했지만 그는 괜찮은 아빠였고 그 ‘선한’모습이 나에게도 좋은 점으로 다가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전처와 이혼하면서 재산 및 채무분할로 인해 1억 원이 조금 넘는 은행 빚이 있었다. 처음부터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 괜찮았다. 그리고 돈 문제는 별 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부양의 의무가 있는 자식이 둘이나 있는 이혼남을 사랑한 건 나의 선택이었지 그가 나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았으니까. 가난하지만 성실한 그의 태도가 좋았고 나는 노예처럼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회사생활이 끔찍한데 그는 자기 일을 숨처럼 생각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터라 나와는 정반대인 그의 가치관도 가히 존중할 만했다. 나는 그의 모든 게 좋아보였기에 그의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에 대한 신비감과 존경스러운 마음은 호기심으로 발전됐고 그 호기심은 우리가 서로 이성이라는 증폭제를 만나서 사랑을 낳았다. 함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셨다. 서로의 집에서 당연하듯 잠도 자고, 국내외 여행을 몇 번 다녀올 정도가 되자 어느새 4계절을 함께 겪어내게 되었고 지금 맛있는 거 먹고 지금 놀러 다니는 당장 좋은 삶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얘기하게 되자 자연스레 ‘돈’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평소 하고 다니는 행색이나 돈 씀씀이를 통해 여유가 없는 형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 현재에 돈이 없다고 미래까지 곤궁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고질적 불안감을 걷어 내려고 했다. 돈이 뭐라고. 돈이야 벌면 되는거지. 어른들 말씀에 돌고 도니까 돈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