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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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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부터 책을 덮는 그 순간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책이 있다. 초판이 나온건 2020년도지만 최근에 우연히 접하게 된 책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가 나에겐 2023년 가장 크게 다가온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서 대학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말그대로 주경야독의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대학생과 얘기를 나눌 일이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같아요. 그게 억울하기도 하고...저는 이 세상을,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없어요.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녀의 표정이 하도 진지하고, 또 스스로도 꼰대가 되기 싫어서 별다른 티를 안내고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갔지만 속으로는 난 아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 그게 인생이란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불공평하단다. 이건희의 딸과 우리네의 삶이 같을 수가 있겠니. 그럼 세상이 공평할 거 라고 생각했단 말이니? 인생이 이렇다는 걸 이제 알았단 말이야? 너는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순진한 지도 모르겠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하렴. 더 열심히, 더 잠을 줄이고, 더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해서 노오오오오오오력 해야 살아남는단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그래, 나도 어렸을 땐 그랬었지 싶었다. 나도 세상의 불공평을 탓하고, 가진자가 계속 더 갖고, 없는 자는 계속 박탈당하는 작금의 현실을 푸념하고 원망도 했다가 그저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꿈꿀 수 있는 것만 꿈꾸게 된, 그렇게 체념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 생각이 얼마나 문제인지 일깨워준 책이 바로 사회학자 오찬호님의 책인 것이다. 이 글의 프롤로그 "읽으면 우울해지는 글을 쓸 것이다" 는 그래서 비장하고, 가슴이 울컥한다. 

-프롤로그 중-

좋은 세상은 그릇된 현실을 외면하면서 가능할 리 없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긍정이란 말이 부유하면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해도 부정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라고 취급한다. 나도 힘들었다. 집필의 회의감이 일상을 지배하려는 찰나, 그래도 공감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불평등에서 '벗어난'예외적인 이야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용기를 낼 수 잇었다. 불평등의 크기를 '줄여'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하자는 말을 공허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이 참으로 기뻤다. 주변에서 가끔 묻는다. 방송이라면, 그저 대중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게 훨씬 이득인데 어찌 정공법으로 사회의 문제점을 말할 용기가 있었냐고.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생활비와 공부할 시간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5년간 신문 배달을 했는데, 이때 보았던 세상은 결코 낭만이란 고상한 단어로 포장될 수 없는 처절한 것이었다. 불평등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밀착시켜 경험한 시간은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새벽 첫차를 타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매일 마주한 나는,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찾으려는 게 얼마나 기만적인지 잘 안다. '게으르니까' 빈곤한 것 아니냐면서, 죽을 때까지 가난한 것 자기탓이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났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행복은 사람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이는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무서운 영향력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소리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만 했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배운 불평등이란 잔인한 덫을, 나는 왠지 아름다운 이야기만 해야 할 것 같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외면하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작가의 불편한 글을 읽으며 나는 왜곡되고 때가 잘못 묻은 나의 시선을 그래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한 번 읽은 걸로는 택도 없었다. 책을 반복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글들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을 읽는 걸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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