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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나에게 기아 타이거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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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챔피언스 필드>

 

고향이 전라도인 아버지를 따라서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팬이었어요. 특히 93년도에는 해태 타이거즈와 빙그레의 원정 경기가 청주에서 5-6차례 정도 진행됐고, 청주에서 펼쳐진 모든 경기에 직관했어요. 1993년 봄,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구장을 방문해서 해태 타이거즈 팀의 빨간 유니폼을 본 그 순간부터 저는 타이거즈의 팬이 되었어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11살 이었던 당시에는 그 팬심이 30년간 진행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가족 외에 친한 친구들 중에는 딱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간혹 있어도 타이거즈 팬이 없어서 직관을 할 생각은 꿈도 못 꾸었기에 TV중계만 챙겨보고 선수 검색하는 정도로만 소심하게 좋아하고 있었어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일 때문에 외국에서 몇 년 살기도 하면서 야구 자체를 멀리하게 된 적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래도 중계가 있는 날 만큼은 시차를 무시하고서라도 타이거즈 경기를 가능한 보려고 했습니다. 미국 여행중에는 야구장을 찾으면서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에서 뛸 만한 애는 누가 있는지 혼자서 점찍어 보기도 하고요. 그게 벌써 십수년 전이네요. 그러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혼밥, 혼술, 혼영 등 무언가를 혼자해도 눈치 보이지 않는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몇 해 전부터 저는 야구장을 혼자서라도 찾고 있어요.

커플 사이에, 친구 사이에 끼어서 혼자 페이퍼 스틱을 흔들며 다음날 폭에서 피맛이 느껴지도록 응원합니다.

성인영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야구가 너무 좋아서 야구 어수업을 따로 만들기도 하고 회원들과 함께 원정 응원을 가기도 합니다. 기아 타이거즈의 용병 선수가 영어로 인터뷰 하는 유튜브 영상을 수업 교재로 쓰기도 하고요. 어떻게든 야알못 들이 타이거즈의 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입니다. 올해는 당일치기로 광주 챔피언스 필드와, 부산 사직 구장까지 다녀왔어요. 광주 챔피언스 필드는 야알못 회원을 데려가서 [김도영 응원가]에 빠진 회원을 타이거즈 팬으로 끌어들였고, 지난 8월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부산 사직구장까지 가서 응원한 뒤 승요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어요. 타이거즈 선수들의 퇴근길 싸인까지 받고 서울로 돌아오니 새벽 3시더군요. 그래도 승리에 취해서 인지 다음날이 힘들지 않았어요.

지난 주말에는 인천 랜더스필드에 일찍 도착해서 선수들이 외야에서 몸 푸는 걸 지켜보면서 속으로 9연승을 빌었습니다. 소심해서 초딩들처럼 최지민 선수, 싸인 해주세요” “이의리 선수, 어깨부상은 괜찮아요?” 라고 묻지는 못했지만 티를 못내고 속으로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열심히 뛰어주길, 그리고 무엇보다 부상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제가 타이거즈의 찐팬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는 경기에서 졌을 때, 화가 난다기보다 나보다 더 속상해 할 선수의 마음들이 느껴질 때에요. 단순히 이기면 좋고, 못하면 비난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본인은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서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1군 선수가 아니라 TV에서 잘 볼 수 없는 2군 선수들도 막연하게 응원하게 되고, 11번째 선수처럼 느껴지는 응원단 선수들의 열정과 고됨이 느껴지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기까지 해요. 유튜브 갸티비채널을 아침 기상시간에 틀어놓으며 하루를 신나게 시작합니다.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께 꼭 말씀해드리고 싶어요. 내 인생의 4분의 3이 타이거즈와 함께 했다고요. 우승해서 좋았고, 져서 속상했지만 내 인생의 많은 드라마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요. 힘들고 지칠 때, 투아웃 상황에서 홈런을 만들어 내고, 크게 역전승을 만들어 내는 타이거즈를 생각하면서 저도 인생이라는 파도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타이거즈 팀스토어에서 유니폼과 굿즈를 사며 중얼거립니다.

 

내가 H,O.T도 이런 팬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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