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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임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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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의 마흔살이 될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머릿속에 아들 하나 딸 하나쯤 낳고 능력있고 나 하나만을 위해주는 대단히 멋진 남자와 결혼을 하고 살거라는 내 미래상을 그린 적도 없었다. 그저 다만 아주 막연하게 때가 되면 결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할거고 때가 되면 애 하나는 있는, 아주 평범해서 가끔 결혼한 걸 후회도 하고, 결혼 안한 젊은 여자들은 부러워 하기도 하는 삶을 살 줄 알았다. 

나의 엄마 세대보다 이혼이 훨씬 쉬워지는 세대가 됐다. 그래, 뭐 살다보면 이혼을 할 수도 있으리라과 생각했다. 대한민국 커플 중 10명중 3쌍이 이혼 한다는 데, 내가 7쌍 커플이 꼭 들라는 보장도 없으니, 소위 팔자가 좀 세다면 이혼을 해서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 딸이 내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비혼의 40대 여자로 늙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단란한 삶을 그렇게 강하게 바라거나 꿈꿔 본 적도 없지만 비혼으로 궁핍하고 쓸쓸하게 늙어가는 오늘 날의 나는 더더욱 꿈을 꿔 본 적이 없기에 나는 너무 당황스럽다. 

아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제 서서히 가임기와 멀어지는 나이가 되니까 내 몸속의 자궁이라는 장기, 난소라는 장기가 제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기능을 멈추게 되는 구나 생각을 하면 하염없이 슬퍼진다. 

"연예인 누구는 마흔 몇 살에 첫 출산 해서 잘만 살잖니! 희망을 가져"

라는 말은 사실 의미가 없다. 그런 케이스야 말로 아주 희박한 확률인 거고, 희박한 확률에 희망을 걸고 싶지 않다. 아니지, 나는 지금 사실 혼자 천천히 늙어가는 비혼의 삶이 절망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다며 그냥 당황스러움을 토로할 뿐이다. 

애를 원한 적 없었지만 애를 낳을 수 있는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서 임신 이라는 걸 못해보고 죽는다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애린 것도 사실이다. 아마 나보다 훨씬 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더 힘들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가 애를 키우기에 좋다 나쁘다 이런 무거운 이슈를 떠나서 요새 문득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은 귀하고, 생명을 품은 엄마의 몸은 그만큼 더 귀하디 귀하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임신 이라는 걸 했으면 절대 지우지 말고(지우지 않을 수 있고) 잘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길 기도해 본다. 원하는 임신이든 심지어 계획에 없던 임신 이라도 축복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해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23년 1월 13일 밤, 나는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내가 타고난 복이 무엇인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달란트라는 게 있는건지를 생각해 본다. 부, 명예, 단란한 가족, 뭐 이런 게 다 나한테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쪼그라든다. 

시간은 이렇게 빠르고, 나 역시 시간에 발맞추어 빠르게 늙어가는 데 나는 이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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