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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하는 삶

무너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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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달력이 2020으로 넘어오면서 나는 많이 아팠다. 십년 넘게 감기몸살 한번 앓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첫 조짐부터 심상치 않았다. 오전에 랩탑 앞에 앉아서 글 쓸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오후부터 온 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근육통이 심해지는 게 아닌가. 어라, 이거 뭐지? 갑자기 몸이 왜 이러지? 딱 감기 전조증상인데?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A형 독감인거 같기도 하고 그냥 감기 몸살 인거 같기도 했다. 몸이 안좋다고 느껴지자 마자 바로 병원으로 갔었어야 하는데 ‘어차피 출퇴근 하는 몸도 아니고 뜨끈한 거 먹고 잠을 좀 자면 낫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병을 키웠다.

한 두어 시간 자고 일어났는데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몸이 심각했다. 38살 먹어서 회사도 안다니고 가족과 독립해서 혼자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사는 싱글 라이프가 ‘감기몸살’을 만나니 처량맞기 그지 없었다. 억지로 뭐라도 먹으려고 저녁쯤 되어 병원에 갔다. A형 독감 증세와 흡사하다고 생각해서 병원을 찾았지만 몸살 약 이틀치만 처방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밥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살 기운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오늘 요가원을 갈 수 있는 체력은 아니었다.

 

‘이번주에 이렇게 2회밖에 못갈 줄 말았으면 월요일에 게으름 부리지 말고 다녀올걸...’

 

싶었지만 이런 후회를 한다 한들 달라지는 것도 바뀌는 것도 없었다. 역시 피지컬이 멘탈을 지배한다. 몸이 안 좋으니 거실 식탁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오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쓰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 핑계로 글을 관두고 블로깅이나 하자 싶었는데 때마침 오늘이 글 공모전 본심 발표날 이었다. 지난 1년간 이렇다 할 수입 없이 글쓰고 요가하는 삶을 살면서 탈락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종일 한 자도 쓰지 못한 날도 많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탈락에 대한 멧집도 함께 커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깟 감기몸살과 폐병 걸린 사람처럼 기침을 해대는 이 와중에 내가 쓴 글이 본심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인 걸 확인하다니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또 안됐구나... 아냐, 다음엔 될거야. 힘내자, 기운내자, 우울한 이 기분에서 빨리 빠져나가자’

 

 

이렇게 평소의 마음가짐이 나오질 않고 끝도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마와 무릎 뒤로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컨디션은 바닥인데 덜컥 2019년을 마감하는 날에 ‘배드뉴스’를 왕창 접한 나의 마음이 지하를 뚫고 내려앉았다.

1년간 버티고 참아내면서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놓지 않았던 희망의 끈이 싹뚝 끊어져 버린 허탈감 이었다.

 

‘또 떨어졌어? 나 이제 어떡하지? 뭘 먹고 살지? 올 한해 내내 글쓰고 응모했는데 이렇게 다 낙방하고 아무 성과가 없는거면 그야말로 나는 패배자가 아닌가. 이러다가 영영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돈은 바닥 날거고, 공백이 너무 오래 되어 이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고...아아아... 난 대체 왜 사는거지? 살 이유가 없나? 그럼 죽어야 하나? 아 어떻게 죽지? 쉽게 죽는 방법 없나?’

 

2019년을 하루 앞두고 몸과 정신의 컨디션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난 그렇게 죽과 약, 땀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내 인생에 왜 이렇게 자갈밭인지 믿지도 않는 신에게 원망과 저주를 퍼부으며 새해를 맞이하고 그렇게 이틀, 삼일을 더 몸 져 누워 있었다.

 

감기를 된통 앓으면서 그래도 당장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아도 일용할 식량이 있음에 감사할 수도 있었지만 그저 나는 당장 눈앞에서 생계의 고통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었다. 그렇게 2019년 끝과 2020년의 시작을 그 어느때 보다 찜찜하게 시작했다. 슬퍼서가 아니라 불안감에 가슴이 울컥-맺혔다. 짐승소리 같은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그토록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글을 쓰는 시간과, 글을 쓰지 않는 시간 모두 나를 좀먹고 있었다.

결국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거겠지)

요가매트를 한참을 쬐려 보다가 그 위에 가장 쉬운 명상 자세인 ‘수카아사나’펼쳤다. 30초에 한번씩 기침이 나오는 통에 요가원을 갈 수는 없었지만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하고 살아내야 했다.

매트를 펼치고 그 위에 가만히 가장 쉬운 명상 자세인 ‘수카아사나’로 앉아서 눈을 감았다. 몸살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서 가슴에 잔 기침만 남겼듯이 그저 고통이 지나가기를, 내 스스로 아직 일어나지 않는 불안에 영혼을 잠식시키지 않기를 잠깐 기도했다. 호흡이 차분해 지자 놀

랍도록 1분이 지나도 2분이 지나도 기침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렇게 인생이 끝나가는데 요가 그건 해서 뭐해. 내가 요가로 밥 먹고 살 것도 아니고’ 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단단히 뒤틀어져 있던 마음이 다시 스르륵 풀린다.

 

나는 다니고 있는 요가원에서 하타요가 시간에 하는 쉬운 아사나 위주로, 대신 아직 건강한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흉부를 압박하지 않는 자세 위주로 조금씩 혼자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깊은 동작을 할 수 없는 만큼 좀 더 오래 쉬운 아사나에서 머물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쓸모없는 몸뚱아리, 잉여인생 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저 우울하기만 했는데 이렇게 매트 위에서 몸을 앞뒤 좌우로 숙이며 익숙한 아사나를 하다 보니 또 어찌 됐든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약 일주일간 몸부터 마음까지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약 열흘만에 요가원을 찾았다.

같은 요가 시간인데도 팔의 각도에 따라서, 팔꿈치의 미세한 벤딩 정도에 따라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자극을 다시 느꼈다. 말이 자극이지 엄청난 고통이다.

왼쪽 다리를 뒤로 뻗는 로우 런지 자세를 취하는데 허벅지 고통에 극심해서 오른쪽으로 엉덩이를 빼는 꼼수를 취했더니 바로 선생님께서 자세를 잡아주신다.

 

‘이렇게 엉덩이 오른쪽으로 빼시면 안되고 허벅지를 가슴에 붙이고 미세하게 나마 위로 엉덩이를 끌어올리세요. 어, 자꾸 오른쪽으로 엉덩이가 빠진다. 안되요. 오른쪽은 밀어넣고, 골반 틀어지지 않게 위로위로 몸을 위로.’

 

난생 처음 컨디션 조절 때문에 요가를 쉬었다가 원장 선생님이 진행하는 죽음의 빈야사 수업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수업을 워낙 꼼꼼하게 진행하는 턱에 회원들의 몸을 좀 많이 잡아주시는데, 그 말인 즉, 다른 회원들 자세 잡는 시간 많은 호흡 카운트가 무한대로 늘어 난다는 거다.

전혀 힘들지 않은 동작인 ‘우타다 아사나’ 역시 선생님을 가르침대로 상체와 목의 힘을 빼고 다리를 단단히 매트에 고정한 채 그 자리에서 열 호흡 이상 머물다 보면 허벅지가 불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데 오늘은 호흡이 서른 카운트가 넘어갈 만큼 유독 길었다. 겨드랑이에 땀이 나고 머리가 어질하다.

 

항상 이렇게 내가 경험한 요가는 종류를 막론하고 항상 수업의 중반부에 허벅지가 불타거나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은 클라이막스가 있었다. 그야말로 좀 더 버틸까 아니면 얼른 ‘아기자세’를 취하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휴식을 취할까 기로에서 좀 더 버티며 작은 승리감을 맛보곤 했었다.

 

절정의 고통스러운 수련을 끝내고 사바아사나 자세로 누웠다. 선생님께선 회원들 한 명 한 명에게 담요를 덮어 주었는데 그때 가슴속에서 울컥 하는 게 올라왔다. 화(火)도 한(恨)도 아닌,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24시간 중 약 8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사실 요가 뒤에 숨어서 생계의 불안을 감추고 있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계속 불안했는데 잘나가는 친구의 ‘괜찮아, 걱정 하지마, 넌 잘 될거야’ 라는 위로보다 내가 직접 내 몸을 쓰며 한 호흡 더 깊게 내쉬고, 도저히 근육이 못 버틸 것 같은 지점에서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채 .....

한 숨 더 버텨내면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요가하는 육체가 버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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