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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지 않았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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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까지 다 보고 갔다. 이동진 평론가부터 시작해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블로그까지 모두가 극찬하는 영화라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특히나 미결로 떠난 이별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남다르게 다가온다기에 뒤늦게 불이 붙었다. (우리 모두 미결로 끝난 사랑 가슴에 풀고 살잖아유)

내가 감탄했던 부분은 감독의 연출과, 탕웨이의 연기력과 분위기, 그리고 끝내 자신을 밀물이 들어오는 해안가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리며 해준을 영원히 잠 못들게 할 것이 예상되는 엔딩은 너무 좋았다. 탕웨이에 너무 심취해서 그 좋아하는 박해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다만 해준이 서래를 사랑했는지는 나는 공감을 못하겠다. 

비싼 스시를 시켜준 거? 해준의 말대로 그 순간 "여자에 미쳐서" 경비 처리도 안될 것 같은 스시를 시켜주고, 용의자의 혐의를 벗을 수 있도록 편협한 수사를 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결혼하고, 애도 있고,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도 있는 남자가 마음이 동할 정도의 예쁜 여자한테 보인 호기심과 잘못된 관심이 자기 자부심을 철저히 붕괴셔 버린 것이다. 

그에 반해서 1부에서 서래는 해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했던 것 같다. 첫 만남부터 알았을 거다. 이 남자가 자기에게 한 눈에 뿅갔다는걸. 원래는 의도적인 연출이었으나 사랑의 마음이 커졌을 거다. 죽음을 택할 만큼... 

나는 그래서 둘의 사랑이 쌍방으로 절절했다는 걸 읽어낼 수 없었다. 게다가 의무방어전을 치룰 만큼, 나쁘지 않았던 중년의 부부관계가 갑자기 이정현이 이혼한 이주임과 사라지는 장면도 너무 뜬금없었다. 차라리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해준이었으면 더 공감하기 쉬웠을 터. 

다만 기가막힌 연출, 미장센 기법은 탄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그건 인정. 

해준은 서래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한 적이 없었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모든 것을 건다. 부모와 자식을 버릴 수 있는 게 "사랑에 미친"남자이다. 그러나 해준은 모든 것을 건 적이 없다. 예쁜 여자에게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자꾸 마음이 갔던 그 정도의 감정 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 전화기에서 138층 이라는 계단표시 어플을 본 순간, 분노로 눈이 돌아갔을 뿐이다. 

게다가 해준과 정안보다 훨씬 사이가 못한 현실부부들도 애가 있다면 그렇게 쉽게 갈라설 수가 없는데, 정안이 아주 쉽게 이제 막 이혼한 이주임과 함께 남편 눈 앞에서 사라지는 장면도 너무 억지스럽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역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를 봐서 둘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땐, 서래만 사랑을 시작했다. 서래만 2부에서 본격적으로 해준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다가, 자기파멸로 이끄는 분노에 흽싸여 삶을 마감한 것 같다. 서래가 왜 분노했냐고? 서래는 해준과의 모든 일을 "우리 일" 이라고 생각하며 그리워 하며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사랑으로 받아들였는데 해준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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