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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교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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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건,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는 거다. 조금만 일이 풀린다 싶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고 허세와 교만이 따라온다. 주로 물질적인 부귀가 따라오는 상황에서 이런 마음이 커진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잘난척 하는 마음이 남과 달리 좀 컸다고 어렴풋이 느낀다. 

어린시절, 내가 첫영성체 까지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주신 부모님 덕분에 성인이 된 이후 수십년을 냉담했어도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돌아와서 가장 좋은 건, 내가 교만해 지지 않도록 하느님이 계속 붙들어 주신다는 거다. 

다윗의 자손이지만 인간의 혈통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느님이 나에게는 있다. 살면서 인생이 잘 풀린다 싶을 때는 끝도없이 교만하다가 좀 힘들면 사주팔자나 점집을 전전했던 내가 결국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한 개신교인 친구는 나에게 선민사상을 얘기해서 놀랐다. 

그 친구의 말은 이러했다.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영문도 모른 채 어릴때부터 하나님을 모르고 총을 드는 아이들은 불쌍하지만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거다. 불교를 믿는 이들도 그러하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구원이 없고, 천국행이 없다."

정말 그러할까? 하느님이 나를 정말 더 이뻐하셔서 나를 그렇게 딱 "뽑아서" 교회로 데려다 주셨을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셨다는 분이 그렇게 사람을 선별적으로 선택할까.  다음은 작가 톨스토이가 한 말이다. 

[뽑아서 모으는 것이라는 교회의 개념 - 더 "나은 사람들의 모임" 이라는 교회개념은 - 그리스도교적인 아닌 교만하고 거짓된 개념이다. 누가 더 나은 사람들인가? 누가 더 나쁜 사람들인가? 베드로는 닭이 울 때까지는 더 나은 사람이었고, 도둑은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는 "더 나쁜 사람" 이었다. 우리는 자신들 안에서 천사와 악마와 만나지 않는가? 그리고 이것들은 너무나 서로 얽혀 있어서 우리는 천사를 완전히 찾아낼 수도 없고 악마가 힐끗힐끗 쳐다보지 못하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혼합된 존재인 우리가, 선택되거나 의로운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어떻게 우리 자신을 간주할 수 있는가? 저기 진리의 빛이 있다. 우리가 얼마나 빛에 가까이 가고 얼마나 일치하는가는 우리들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무릎을 탁 치며 읽었던 생활성서사에서 본 글귀이다. 정말 우리는 모른다. 오늘이 내가 계획한 대로 무탈하게 흘러갈지, 어디를 조금 다칠지, 자다가 숨이 끊길지 정말 알지 못하는 인생 아닌가. 그저 내 마음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가능한 그 분의 뜻에 맞추어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뿐...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을 답습하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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