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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남원 할머니의 동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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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이야 정갈한 시골밥상이 몸에도 환경에도 이롭다는 걸 알지만 어린 시절 나는 극심한 편식쟁이 였다. 김밥을 좋아했지만 당근과 시금치는 쏙쏙 골라냈으며 콩자반과 멸치를 억지로 먹이려는 엄마 앞에서 보란 듯이 음식을 게워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가 안 먹겠다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진 못하셨다. 달걀말이와 김, 각종 소세지 반찬이 있어야 밥 한공기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나의 친가는 남원, 외가는 부산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렇게나 남원에 사시는 친할머니 댁에 가는 걸 꺼려했다. 바로 음식 때문이었다. 부산에 계시는 외할머니 댁에 방문할 때면 입맛 까다로운 손녀를 생각해서 인지 어린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달짝지근한 반찬들이 그렇게 많았던 반면 남원에서 평생 농사를 짓기만 한 할머니는 세심하지 못했다. 손주가 나 하나도 아니었기에 요새처럼 아이가 귀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배가 고프면 어련히 알아서 먹게 된다는 게 할머니의 신조 엿던 듯 하다.

남원 시내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할머니댁, 사매면에서는 지리산이 코앞에 있다고 생각될 만큼 지리산 줄기가 바로 옆집처럼 가깝게 느껴졌는데 어릴 때 내 기억으로는 슈퍼나 편의점이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없었다. 대신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햅쌀이며 다섯 가지가 넘는 김치 반찬이며 사골과 수육이 식탁위에 늘 차려졌는데 나는 반참 냄새를 못참고 코를 막으며 맨밥만 퍼먹기 일쑤였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배추김치부터 시작해서 총각김치, 갓김치, 고들빼기, 백김치, 더덕무침, 그 밖에도 돈 주고도 못 사먹는 남도 특유의 반찬이 매번 상 다리게 부러질 만큼 눈앞에 놓여져 있었지만 아직 초등학생 이었던 어린 내 눈에는 죄다 맵고 짜고 군내나는 음식일 뿐이었다. 남원 할머니는 도시에서 온 손녀가 맨밥만 먹는 걸 두고 늘 속상해 하셨다. 또 그런 시어머니를 보면서 엄마는 좌불안석이었다.

너는 왜 돈 주고도 못 먹는 이 귀한 음식을 두고 맨날 소세지랑 햄 타령이야. 시골에 왔으면 그냥 좀 할머니가 음식 해주는 대로 먹어. 누굴 닮아서 이렇게 고집이 세니...”

엄마는 나를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했지만 나는 요지부동으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또한 조그만 게 고집은 세서 억지로 먹게 했다가는 지난번처럼 밥상머리에서 토악질을 할까 걱정이 되었던 건지 더 이상은 나를 어쩌지 못하셨다.

아가, 아가 뭐 주까. 아가 할머니 음식이 으째 입에 안맞아서 워쩐대. 그렇게 맨밥만 먹으면 목 맥혀, 아가. 여기 동치미라도 같이 먹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말간 국물에 채가 썰린 무가 위에 동동 떠 있었는데 표면에 살엄을이 살짝 일어서 인지 순간적으로 팥없는 빙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냄새부터 맡았다. 시큼한 냄새가 웬일인지 싫지 않았다. 숟가락에 국물을 살짝 찍어서 맛을 보았는데 짭짤하고 뒷만은 알싸하게 시원했다. 나와 동치미의 첫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몇 년

 

, 남원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동치미는 내가 시골밥상에서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반찬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치미 만큼은 잘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밥 한 술에 동치미 국물 한 술 이렇게 떠먹다가 나중엔 아삭한 무도 건져 먹었다. 나중에는 밥을 다 먹고 나서 동치미 국물을 디저트처럼 마시기도 했다. 동치미를 더 먹기 위해서 밥을 한 공기 더 먹은 적도 있었다. 사시사철 남원 할머니 댁에는 동치미가 있었다. 난 할머니댁의 뒷마당에서 제 몸을 감춘 채 땅속에 깊이 박혀있는 동치미 항아리를 보았다. 엄마는 할머니의 동치미가 언제 먹어도 맛이 들어있고 싱싱한 이유라고 했다.

할머니가 원래 요리도 잘 하시고, 죄다 농사지은 재료를 쓰니 재료 자체가 좋기도 하고, 게다가 항아리를 땅에 묻어 놓았으니 냉장고랑 비교가 될 리가 있니? 동치미가 아니라 보약이지.”

그 이후로 나의 사춘기가 막 끝나갈 때쯤, 이제는 할머니의 손맛이 듬뿍 담겨있는 각종 나물 맛에 눈을 뜨고, 백화점에서 사다 먹는 전라도식 김치와 남원 할머니의 김치 사이에 간극이 동해와 서해의 바닷물의 푸르름 정도 만큼이나 다르다는 걸 막 알 때쯤 할머니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월급을 타고, 간혹 맛집을 돌다가 동치미가 맛있는 고깃집을 발견할 때는 반쯤 반갑고 반쯤은 실망한다. 식당의 반찬으로 나온 동치미는 바로 유년시절의 아직은 건강하셨던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반갑다. 허리를 숙여 땅속의 옹기에서 동치미를 꺼내던 할머니의 굽은 등과 손녀가 유일하게 먹는 음식이었던 동치미를 하얀 사기그릇에 담아 오던 할머니의 투박한 손이 눈 앞에서 재현된다. 그러나 역시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아무리 마주 앉은 상대방이 여기 진짜 동치미 맛집이다, 그치?” 이러면서 내 동의를 구하고, 나도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식당의 동치미는 너무 시큼하고, 어느 식당은 너무 달며, 어느 식당은 좋은 재료를 넣는다며 과하게 멋을 부렸다.

남원 할머니의 동치미는 그야말로 손맛의 정석이었다. 적당히 군내가 나고, 적당히 시큼한데, 살얼음이 얼어있는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 머리칼은 쭈뼛 서는데 속은 편안했다. 그리고 나서 사기그릇에 남아있는 채 썬 무는 씹어먹노라면 적당히 달고 아삭거렸다. 할머니 댁에서 한 번에 가장 오래 머물렀을 때가 45일쯤 되었는데 그 기간 내내 맨밥에 동치미만 먹고도 앞마당과 뒤의 야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화장실도 잘 갔으니 그야말로 보약이었다.

할머니가 떠나가신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 기억도 희미해지고, 그 이후로 할아버지 마저 하늘로 가셨다. 작년엔 섬진강을 여행하다가 기억을 더듬어 조부모댁을 찾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집은 이미 다 허물어져 있었고, 집이 있었던 곳에는 내 키보다 더 높은 잡풀만 무성하게 솟아나 있었다. 나는 거기서도 동치미가 묻혀져 있었던 위치를 찾아내고 다시 손녀에게 먹이겠다며 동치미를 한 그릇 내오던 할머니를 마주했다. 누군가의 음식이라는 게 그렇다. 남은 사람이 한 인생을 걸고 기억할 만한 손맛을 영원히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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