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속의 법

부당해고 구제신청의 마지막, 심문

반응형
SMALL

인터넷에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례 및 방법 등을 검색해서 신청서를 제출하고 답변서를 받고 추가 이유서까지 다시 제출하며 서류를 서로 핑-퐁 주고 받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서 심문 일정이 잡혔다. 

지긋지긋 했다. 서로 피말리는 게임이기도 했고 회사 내부 지인을 통해서 "야 지발로 퇴사하고 나간 XX, 회사 상대로 소송 걸었대더라"가 소문으로 쫙 퍼졌다. 

 

난 인사팀인데, 난 인사팀이었는데...사실 이직할 마음도 없고 더 있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다. 

만약 이직할 생각이었다면 회사에 그렇게 부당한 일을 당해 놓고도 결국 찍소리도 못한채 조용히 퇴사했었어야 했었을 거다. 

 

내가 저렇게 갑질하면서 지 발로 사표 쓰게 만드는 상사랑 싸워보자고 생각했던 건 개인적인 억울함 외에도 이렇게 교묘하게 사람 괴롭혀서 내보내 왔다는 회사에 대해서 응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시는 저한테 했던것 처럼 직원 괴롭혀서 내보내지 마세요, ,해고하고 싶으면 해고예고 수당을 주든지 3개월치 급여라도 더 챙겨주세요 - ] 

이런 느낌?

 

 

결국 답변서가 오고가고 심판일정에 제주지방 노동위원회를 방문했다. 여기서 괴로운건 약 3개월간 안봤던 상무를 다시 봐야 한다는 거? 그리고 같은 인사팀 소속으로 그냥 저냥 관계를 유지했던 사내 노무사랑 동지가 아닌 적으로 만났다는 점이었다. 

 

떨지 말자, 떨지 말자, 내가 떨고 있다는 걸 저들이 알면 지는거다, 뭐 이렇게 계속 스스로를 다독이며 심문이 시작되었다. 

 

부당해고이냐 아니냐를 주장하는 상황이었는데 노동자 대표 위원이 상무를 향해 질문을 해댔다. 내가 분명 7월 말까지 일하겠다고 했는데 왜 퇴사한 날 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냐, 왜 면담을 통해서 나를 겁박했냐 등등...

상무가 얼버무렸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나에게 질문을 했는데 사실 나야 구제신청서 및 이유서를 통해서 충분히 소명한 내용을 육성으로 다시 되풀이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떨림은 자자들고 차분히 답변할 수 있었다.

 

위원장님은 화해 권고 결정을 내리고 잠시 심문을 중단했다. 결국은 나-상무-노무사 외 1명 노동위원회 관계자가 작은 방에 모였다. 더 가까이 적을 대면하는 불편함이란....

 

상무는 이미 내 후임을 뽑았기에 내가 올 자리가 없다고 했다. 회사가 사정이 힘들고....내가 올자리가 없다며 울먹 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아닌가. 아 지금 내 앞에서 눈물연기? 

나는 담담하게 그럼 3개월 정도 위로금을 요구 했고 상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노무사랑 귓속말로 얘기했다.

그리고 다시 심문이 열리고 결국은 퇴사는 7월 말로 진행하되 3개월 급여를 추가로 받는걸로 결정이 났다. 

 

 

'속이 시원하다~'

나는 노동 위원회를 떠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마음속으로 그깟 돈 천만원 받자고 내가 이렇게까지 바득바득 정보를 모으고, 신청서와 이유서를 작성하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소문이 나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뭐 이런식으로 퇴사해야만 했나 싶은 후회와 통쾌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뭐 그 이후로 나는 이직하지 않았고 이직할 마음도 없었고 그 인사상무를 내 인생에서 만난것은 내가 결정적으로 조직을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는 마음을 먹게 해준 강력한 동기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개 개인이 조직과 싸운다는건 사실 많이 험난하고 지치는 일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10년간 HR 밥을 먹어왔기에 이길 수 있는 게임이었다 (이긴다는게 회사로 부터 돈을 받기 위함이었기에)

 

회사를 떠난 후에도 나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상사의 괴롭힘으로 괴롭힘을 받는 동생들에게 나름의 상담을 해주곤 했는데 요지는 별 게 없었다.

 

1.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말 것

2. 사직서는 절대 먼저 던지지 말 것 (나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3. 이메일과 녹음 파일 등으로 철저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혹은 퇴사 및 권고사직을 종용받았다고 증거를 남길 것 (녹음이 불법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3자의 대화를 도청하는 게 아니라 내 육성이 들어가 있는 직접 대면 녹음을 증거로 충분히 쓰일 수 있으니 녹취는 추천한다)

 

이렇게 몇년 간 몸담았던 기업을 결국 화해조정으로 마무리하고 회사를 떠났다.

소송으로 마무리하고 이제 프리랜서의 삶이 펼쳐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