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작가를 꿈꿨었다.
뭐 기억나지 않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러니까, 초등학교 3-4학년 시절 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을 때부터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글의 질과 상관없이 분량을 채워서 열심히 하는 애들한테 뿌렸던 것 같긴 하지만 10살, 11살의 어린이에겐 글짓기 상이 참 뿌듯한 무엇이었다. 연필을 들고 원고지에 꾹꾹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좋았다.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두서없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게 좋았다.
스스로를 대단한 이야기꾼 인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아주 막연하게 나는 '작가'가 될 거야,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작가가 뭔지도 모르면서 작가로 밥벌이를 할 거라고 확신을 했었다.
그러다가 그 꿈을 잊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남들처럼 살았고... 이런저런 인생의 크고 작은 성공과 성공보다 큼지막한 실패를 거친 뒤 나는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진 거다.
솔직한 경험을 담은 에세이집을 냈으나 출판과 동시에 입소문 한번 타보지 못하고 그대로 서점에서 사라졌고... 다시 글을 써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웃긴 건 쓰는 재미를 잃으니 책을 읽는 재미마저 앗아 갔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다시 만난 책이 손원평 작가님의 "튜브"다. 책 뒷면에 쓰여 있는 "운명을 바꾸기로 결심한 한 남자의 인생 개조 프로젝트. 변화가 필요한 당신을 위한 단 한 권의 소설"이라는 노란색 문구에 홀리듯 구매했다.
필력이 좋은 작가답게 주인공이 움직이고 생각하는 쪽으로 나를 확확 이끌고 간다.
무엇보다도 책 속의 한 구절이 너무 와닿았다. 주인공 성곤의 대사다.
- 난 그동안 뭘 할 때마다 늘 목표를 생각했거든. 근데 그 목표들이 순수하지가 않았어. A는 B를 위한 행동이고 B는 C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니까. 근데 그게 다 부질없게 느껴지더라. 최종 목표가 무너지면 중간에 했던 A부터 Z가 전부 무의미해지더라고. 그래서 이제 그렇게 거창한 목표 같은 걸 안 세우기로 헸어. 행동에 목표를 없애는 거지. 행동 자체가 목표인 거야.
위 대사에서 난 뭔가 전율을 느꼈다. 내가 너무 주인공 하고 꼭 같은 삶을 살아온 거다. 행동 자체가 목표였던 삶이 나에게 있었을까. 있었겠지.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 그랬을 거다. 피아노 치는 거 자체가 좋았고 책 읽는 거 자체가 좋았던 삶.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는 자체에서 환희를 느꼈던 삶이 있었을 거다.
그걸 잃은 지 이미 오래였다.
재테크 책을 읽는 건, 팁을 얻어서 돈을 좀 벌어 볼 요량으로 읽고, 소설책을 읽는 건 영감을 얻기 위해서 읽었다. 내가 일하고 읽는 건, 매달 상가 월세를 내고 이 한 몸 먹고살기 위해서 이다.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만남 자체가 목표라기보다 만날만 한 이유가 있기에 만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부정할 수 없었고 내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나도 주인공이 고쳐 먹은 삶의 자세처럼 행위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살고 싶어졌다. 블로그를 하는 것도, 혹시라도 수익이 날까 봐 (브런치는 광고수익이랑 무관한 블로그 라지만) 혹시라도 글 공모전에 뽑힐까 봐 기웃거렸던 마음이 컸지만 버렸다.
뭘 하든, 뭘 도전하든 행위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책을 구입해서 읽은 나의 우연에, 다시 책 읽기가 단순히 "재미"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이 책의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입으로는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몰라... 재밌게 살아야 해'를 떠들면서 정작 나는, 100년이고 1000년이고 살 사람처럼 미래를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삶의 태도를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빈다.
내가 내 인생에 간절히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기를...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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