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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연애실험: 블라인드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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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꽂혀서 달리게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푹 빠지게 되더라도 어떤 시리즈는 하루에 1화씩 야금야금 아껴보고 싶은 게 있는가 하면, 어떤 프로그램은  밥먹으면서 보고, 과자 먹으면서 보고, 침대에 랩탑을 가져 가서 자기 전까지 보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얼 예닝인 [연애실험 :  블라인드 러브] 가 내게는 딱 후자쪽이다. 하루에 9화를 봐버린 리얼 연애 예능인 것이다.

말 그대로 연애 실험! 결혼을 꿈꾸는 남녀가 실험에 참가한다. 휴대폰 및 SNS가 차단된 상태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대화를 한다. pod(s)라 불리는 캡슐 같은 공간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커웠는지 외모를 보지 않는 벽을 두고 대화하면서 호감을 갖고 심지어 단 며칠만에 사랑에 빠진다. 결국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프로포즈를 하게 되고 선 프로포즈 이후에 칸쿤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육체적 친밀한 관계를 쌓아나가게 된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그렇게 사랑에 눈 멀 수 있을까 (love is blind?), 외모, 조건, 배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사랑을 찾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외모라는 벽에 막혀서 뒤로 물러나기도 한다는 점이다. 

"윌유매리 미?"

"예쓰."

를 외쳤지만 후에 제작진을 향해 [나는 사실, 좀 키가 큰 남자가 좋아했다, 육체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여자, 인종에 대한 가족 및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는 흑인*백인 커플, 서로 외모적인 조건은 맞지만 리얼로 돌아온 뒤 금전적인 부분의 갈등이 예상되는 선남선녀 커플 등.... 웬만한 미드 보다 흥미진진한 연애 예능을 보면서 하루에 시즌을 다 끝낼만큼 빠져들었던 건 너무 우리 한국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사는 바로 이곳 보다 훨씬 시선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 너무 한국의 남녀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우리 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나는 사십대 중반이고 넌 삼십대 중반 아니야. 너 감당할 수 있겠어?

- 우리 아빠는 내가 백인하고 사귀는 걸 본적이 없는데...넌 흑인 여자랑 사귈 땐 편견이 어땠니

- 아직 학자금 대출도 안갚았단 말이야? 화장품은 한번에 200불씩 긁는다고?

 

등등 현실을 떠나서 나의 종교관, 가치관, 인생관이 딱 맞아떨어져서 호감을 느껴 남은 인생을 같이 보내겠다며 눈물을 흘리고 청혼을 주고받았던 그들이, 상대방의 외모에 실망하고, 또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아주 현실적인 조건에 서로 실망하고 만다. 

 

자, 그럼 여기서 궁금증 하나!

love is blind! 즉 사랑에 눈이 먼다는 정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외모나 눈이 멀었다가 성격이나 조건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경우 뿐 아니라 성격이나 가치관에 운명을 느꼈다가 외모나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경우 모두 실패가 아닌가. 

 

즉,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찰나의 감정인지, 너무 부질없게 느껴지는 거다. 

감정은 너무 덧없다. 좋았던 감정이 사소한 오해 하나로, 수초만에 상대방에게 악담을 퍼붓고, 내가 경솔했다며 상대를 향해 고개를 절절 흔들고 만다. 물론 그런 풍파를 다 겪은 후 더 큰 사랑으로 발전 시키는 커플도 있으니 그런 커플이 누구일까 예측하는 재미도 있다. 

 

여러 커플들의 갈등과 마찰,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족의 반응을 보면서 결혼하기에 좋은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나의 인생을 함께 하면서 아이 혹은 반려동물을 키우며 함께 늙어갈 사람은...어쩌면 나를 눈멀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고, 웬만한 일에 무던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 아닐까. 

오늘은 달콤했다가 내일은 신경질 적인 사람이 아니라 나무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는 사람...

 

아무튼 간만에 나를 하루종일 넷플릭스 앞에서 달리게 만든, 넷플릭스 TV프로그램 이었다. 

처음에는 신박한 기획 의도에 빠져들었다가 울고 웃고 화내고 싸우다가 화해하며 궁극적으로 한달 만에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는 저쪽나라 얘기는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결혼은 정말 잘해야 한다. 

결혼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근데 그 말에는 '나'라는 사람이 과연 결혼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제대로 성찰하는 게 첫번째다.

 

정말 강추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하나다. 

결국 인종과 언어를 떠나서 결혼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얼마나 헛된 결정을 내리는지 타인을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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