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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작가시점

너의 몫까지 살아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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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나중을 위해서 오늘의 달콤함을 양보하는 삶을 살아왔다. 나중을 위해 오늘 한 잔의 스타벅스 비용은 당연히 저축했다. 훗날을 위해서 해외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오늘의 즐거움은 미래의 안정과 더 큰 행복을 위해 기꺼히 양보했다. 우리 모두, 어릴 때부터 항상 대비하는 삶에 익숙하지 않은가. 하기 싫은 공부를 참고 버틴 만큼 빛나는 대학교 입학통지서를 손에 쥐었다. 역시 엄마 말을 들어서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대학교때 조차 취업이라는 미래 과제를 준비하느라 그 빛나던 시절을 만끽할 수가 업성. 대학교 다닐 때는 취업만 하면, 막상 취업을 했더니 다시 결혼과 노후 준비라는 과제가 있었다.

때때로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사는 게 과연 맞는가. 하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 순간의 쾌락을 쫒으면서 살다가는 베짱이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얘기를 듣고 자랐던 게 컸다. 지옥철에 시달리며 출근하면서 나를 버티게 한 힘은 월급날 이었다. 친구들이 명품백을 흔들면서 눈 앞에 보여주면 차곡히 쌓여가는 나의 적금 통장을 떠올렸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모든 욕망은 나중을 위해서 차곡히 눌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게 옳은 길이라고. 욜로(YOLO)를 좋아하다가 늙어서 가난을 면치 못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던 20144월이었다.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너무 갑작스레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온 나라가 애도와 분노, 슬픔과 진실규명으로 떠들썩했다. 나는 자꾸만 아이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구명조끼를 입은 채, 자리를 지키라는 선원의 지시에 따라 제 자리를 지킨 채 킬킬 대던 아이들, 그 날,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앞날이 구만리 같던 아이들이 눈 앞에 아른 거렸다.

나한테 내일은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을 아이러니 하게도 안타깝게 죽어간 학생들이 일깨워주었다.

나는 몇 달간을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내 인생의 끝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나중으로 미뤘던 수많은 행동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매일 하루를 좀더 촘촘히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소비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덜어냈다. 커피 한 잔이 어울리는 날씨에는 힙하다는 동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순간을 만끽한다. 가끔 커피가 메뉴로 바뀔때도 있다. 혼자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하면서 작은 경차도 하나 구입했다. 주말, 혹은 주중 어느 때라도 바다가 보고 싶으면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바다를 보고 돌아온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돈과 시간을 낭비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지 않을 내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삶을 버리게 되었다. 기쁘게 보내는 만큼의 날들이 쌓여서 내 미래가 완성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해마다 4월이면 나는 깃털같이 많은 날들을 남기고 떠난 아이들을 생각한다. 하루가 무너질 때, 하루가 괴로울 때, 하루가 의미 없을 때, 또 하루를 버텨야만 할 때 아이들이 생각난다.

내 인생을 바꾼 한 떨기 꽃이 되어 사라진 아이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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