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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꼭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아이를 유달리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었다. 허나 아이 없는 딩크족으로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보니 내가 좋아하는 그의 몇몇 부분을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이다. 언제까지나 독신의 삶을 유지한다면 모를까,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어 자연스럽게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의 아이를 거부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나와는...아이를 갖지 않는다는 남자가 전처와 낳은 자식의 부양의무를 저버리지 않겠다는...뭐 그런...내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을 제시하다가니...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려고 하는 건지 스스로 어이가 없네. 혹시나 오해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결혼의 조건을 말하자는 게 아니야, 나는 지금. 누가 더 손해고 누가 더 감수해야 하고 객관적으로 비춰지는 우리 둘의 모습이 아니라 태도와 가치관이...아니다, 말해 뭐해. 아이를 원치 않는다고? 둘만 보고 살자고?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사이가 소원해 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전처와의 자식이 하나도 아닌 둘이나 있어?”

남자는 한숨을 쉬며 내 새끼들 미안하게 어떻게 자식을 또 갖냐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 대신 이 미안한 마음을 평생 갚으며 살겠다고 잘하고 살겠다고.

아마 그 찰나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적어도 나와 내 인생에는.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분노와 원망이 목젖 뒤로 흘러 넘쳤는지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로 그 순간 남자와 끝을 얘기하지는 않았다. 나의 표정을 읽은 남자는 바로 아이 갖는 문제는 좀 더 천천히 생각해 봐도 늦지 않는다, 상황이 괜찮아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남자의 행동 때문이었는지 끝이 어딘지 알고 싶은 나의 집요함 때문인지 목구멍이 잠잠해 지자 나도 더 이상 아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이를 제외하고 돈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갑자기 나의 부모님께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잘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소중한 딸을 훌륭하게 키워주신 거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가 뭐 그렇게 훌륭하게부모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특히나 이 남자와 결혼을 한 다면 부모님께서 나를 잘못키웠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잠자코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미 아이 문제로 마음이 상할때로 상하고 심박수가 계속 올라가 있는 상태라 남자의 좋은 사위가 되겠다는 다짐은 이미 귀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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